토요일 아침에 호다닥 동생이 해준 토스트를 먹고 부산으로 넘어왔다. 비밀인데 후라이팬에 빵을 데워 카야잼 바른 토스트보단 뚜레쥬르의 겹겹이 연유크림 데니쉬가 더 맛있었다. 웬만하면 진짜 그 토스트에 감동 가산점 줘서 맛은 몰라도 적어도 더 멋지다고 해주고 싶은데 새로 발견한 데니쉬가 너무 맛있었다. 서울 올라와서 벌써 두 번이나 사먹음. 아무튼 그래도.. 데니쉬는 맛만 보고 우유에 카야토스트를 먹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동생이 끝까지 진주 다른 곳에 둘러보지도 못하고 가서 어떡하냐고 아쉬운 척을 해줬지만 집에서 버정까지 향하는 그 짧은 길에 아주 햇빛에 타들어가면서 조금 남아있던 아쉬운 마음도 자연스럽게 같이 타서 사라졌다. 버스를 타고 창 밖으로 무슨 진주 씽씽이인가를 타러가는 동생 뒷모습을 보고 같이 사진이라도 한 장 찍을걸!이라고 생각하면서 잠에 들었다. 그래도 내가 사준 옷들을 잘 입고 있는거 보니까 조금 예뻤다. 옷을 더 골라서 보내줘야겠다. 누나가 열심히 일할게!
일어나보니 벌써 부산에 도착했고 친구와의 약속시간 한참 이전이었다. 그래서 호텔 대신 친구 집으로 향했다. 나름 여름 니트라고 입고갔는데 여름과 니트는 같이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었다. 친구 집에 도착하자마자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층이 높아서 베란다 아래로 작고 큰 집들이 보이는 뷰가 멋졌다. 핸드폰 다운그레이드 당하면서 사진을 잘 안찍게 되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아쉽다. 남는건 사진인데! 서울에서 내려오는 다른 친구도 도착해서 같이 서면에 타이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주 강렬한 똠양꿍이었다. 어딜가나 타이음식 원픽은 다들 팟타이다. 나는 자꾸 팟타이만 생각하면 전 회사 동료가 본인이 집에서 만들어 봤는데 설탕 한두스푼으로는 절대 그 맛이 안난다고 아주 설탕을 들이부어야한다고 말해준 것이 떠오른다. 그래도 팟타이는 어딜가도 비슷하게 맛있긴 하다. 아 설탕이 그만큼 많이 들어가서인가? 점심을 먹고 호텔 체크인을 했는데 그냥 에어컨=행복..짐만 놓고 나가기는 너무 힘들어 조금 쉬다가 바다를 보러 해운대로 갔다.
원래 일정은 해변열차를 타는 것이었는데 블로그 글 보니 에어컨이 잘 작동되지 않아 사우나가 따로 없다는 후기를 보고 만장일치로 포기했다. 바다를 보고 너무 행복했지만 부산 태양이 막 때려서 눈물이 나 사진도 못찍고 카페에 들어갔다. 가기 전부터 에이드와 아아중에 무엇을 마셔야 잘 마셨다고 소문이 날지 고민을 했다. 결국 친구랑 레몬그라스 바닐라빈 에이드와 아이스아메리카노 각각 시켜 나눠 먹기로 했는데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답이였다. 시원한 데 앉아서 창 밖으로 바다를 볼 수 있다니 아주 행복했다. 그냥 안더워서 좋았다. 그러다 갑자기 미모티콘 만들기에 꽂혀 셋이 신나서 만들었다. 나는 내 얼굴 인식해서 미모티콘 같이 움직이는 것도 처음 알았다. 조금 눈물 나네.. 그래도 평생 카페에 있을 순 없어 햇빛이 좀 덜해 보일 때 용기를 내서 카페를 나섰다.
카페에서 나와 바다 쪽으로 걷는 길에 인스타에서 많이 보이던 젤라떡을 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래서 얼떨결에 줄서서 젤라떡을 먹게 되었다. 줄서면서 나는 뭐 찰떡파이도 싫고 찰떡아이스도 싫어한다고 어필했지만 사실 젤라떡은 주먹보다도 작아서 한 입씩 밖에 먹을 수 없었다. 로투스랑 피스타치오 맛을 먹었는데 둘 중엔 로투스가 나았다. 사실 피스타치오 맛은 뭘 먹어도 맛있다고 생각해본적이 없는데 이탈리아에 있을 때 피스타치오 요거트가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한 번 사먹었다가 감동받았다. 그 뒤로 비슷할까 싶어 베라의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도 먹어봤지만 일단 그 색 부터 거부감이 들고 맛도 고냥그렇다(사실별로다). 나중에 부자되면 그 피스타치오 요거트 무조건 내가 수입해서 팔아야지. 세 번째 사업 아이템이다. 친구가 그 젤라떡 받침대를 서울까지 들고 올라갔는데 그걸 어디에 쓰려고 그렇게 애지중지 가져갔는지 궁금하다.
날이 더운게 짜증났지만 더운만큼 하늘도 구름도 바다도 예뻤다. 그리고 슬슬 해가 지면서 하늘이 더 멋진 색이 되었다! 해변에 사람이 많았다. 그렇게 사람들이 많은건 오랜만에 본 것 같다. 바다를 따라서 걷다가 갑자기 사진을 찍자!라고 해서 광안리에 인생네컷을 찍으러 갔다. 가는 길에 자꾸 친구가 우리 인생네컷 찍은 적 있다고 말하는데 정말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 16년 전까진 진짜 어렸을 때 일부터 사소한 것들을 잘 기억했는데 그 후로는 인생 그 순간순간이 재밌어서 예전 일들은 다 까먹고 살게 되었다. 사실 이유는 내가 만들어 붙인거지만 정말 전에는 누가 어떤 옷을 언제 입었었는지까지 다 뚜렷했는데 이젠 큼직큼직한 일들도 그런 일이 있었단말이야?!할 때가 종종 있다. 정말 중요한 것들만 안 잊으면 되지. 일기를 열심히 쓰거나!
광안리에 도착해서 인생네컷을 찍는데 당시에는 그냥저냥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음날 정신차리고 다시보니 다들 눈동자에 영혼이 없고 입만 웃고 있어서 웃겼다. 셋 다 너무 힘든 상태에서 ㅎㅎㅎ하는게 보인다. 사진을 찍고 광안리 바다쪽으로 걸어갔는데 해가 져서인지 날이 좀 선선하고 걸어다닐만 했다. 모래 사장 위에 의자랑 테이블들이 있어 앉아서 광안대교를 구경했다. 그리고 옆에 느린 우체통 달팽이톡이라고 1년 뒤에 보내주는 엽서 작성하는 곳에서 간단하게 카드를 썼다. 새로운 곳에 가면 꼭 친구나 가족에게 엽서를 써서 거기 우체국에서 부치는데 근래에 어디 새로운 곳에 가질 않아 엽서를 부친지도 참 오래되었다. 지난 번에 친구들끼리 부산에서 만났을 때 여기 부스 앞에서 영상통화를 했었는데 이번엔 나도 같이 여기 서있다니 신기했다. 엽서를 쓰고나니 다들 아주 진이 빠져서 어찌저찌 숙소까지 돌아왔다.
그래도 오는길에 치킨까지 시키고 올리브영에서 팩도 사고 편의점에서 마실거리를 사서 돌아왔다. 푸라닭을 처음 먹어봤는데 맛이 있었다. 씻고 모여서 치킨을 먹으면서 BTS 영상을 봤다. 내가 내려오기 전부터 요즘 아주 방탄 세상 속에 빠져 살고 있다고 좋은거 전파해줄테니 단단히 각오해라! 했는데 종일 힘들어서 잊고 살았다. 그치만 다들 천사인지 아주 새벽 3시, 4시까지 같이 방탄 영상 보면서 멤버 얼굴이랑 이름 외우고 토론까지 해줬다. 티비 끄고 불 끄고도 한참 떠들다가 해가 중천에 떠서 일어났다. 와중에 체크아웃하기 전에 김치 사발면을 끓여서 먹었는데 컵라면 잘 먹지도 않으면서 맛있었다.
가방 메고나와 어디갈지 고민하다 밥을 먼저 먹었는데 히츠마부시 장어덮밥을 먹었다. 샐러드에 나온 파프리카 몰아주기 가위바위보를 하는데 15년도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밥을 먹고 어딜갈지 고민하는데 비가 왔다. 비도 오고 짐도 있어서 멀리가는 계획은 포기하고 근처 카페에서 크로플을 먹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창 밖을 보는데 건너편 도넛집에 끊임없이 사람들이 줄서서 들어가길래 무슨 대단한 맛일까 궁금했다. 그치만 너무 배가 불러서 먹진 못했다. 여기저기 못다녀서 좀 아쉽지만 아쉬워야 또 다시 온다고 친구들이랑 눈물의 인사를 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이번에 비행기 예약하면서 국내선 처음타본다고 신났는데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 제주도 갈 때 타봤다. 국내선 국제선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공항 자체가 호주에서 한국 돌아오고 처음이라 설렜다. 공항에도 사람이 많았다. 겨우 자리를 찾아 앉아 기다리면서 다음날 출근해서 팀회의 때 공유할 파일을 수정하..려고 했지만 걍 내일 해야지 하고 대충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비행기에 올라 빈센조를 봤는데 틀자마자 서울에 도착한 느낌이었다. 사실 부산에서 김포 올라오는 것보다 김포에서 집까지 가는 길이 더 멀었다. 심리적인것도 그렇지만 실제 물리적으로도 더 멀었다. 공항 옆에 회사가 있는데 지금 집 갔다가 몇 시간 뒤에 다시 여기까지 와야한다는 것도 마음에 안들었다. 월요일에 재택할걸 괜히 출근한다고 했다. 그래도 집 근처 역까지 아빠가 차로 데리러 와줘서 많이 걷지 않고 집까지 갔다.
집 떠난지 일주일도 안되었는데 집이 그렇게 포근하고 따뜻한 노란색 느낌일 수가 없다. 거의 한 학기 교환다녀온 기분이었다. 사실 금요일에 진주에서 마지막으로 저녁먹고 잠들었다가 깼을 때 갑자기 너무 우울하고 슬퍼서 아 나는 내일 부산에 갈 수가 없다, 그냥 지금 서울 올라가야하나하다가 집 정리를 하면서 마음을 정리했었다. 뭔가 저녁 즈음에 낮잠을 자다 깨면 알 수 없이 심하게 우울해진다. 나는 세상사람 다 그런줄 알았는데 아무도 공감 안해준다.. 쉬러 내려갔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집이 소중한걸 알려고 갔다왔나 싶기도 하다. 계속 머리론 ppt 조금이라도 만져야지..하면서 손은 빈센조 다음화 다음화 계속 누르면서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월욜이라 새벽 5:50 기상함.. 출근 버스 타면 내가 그래도 마지막으로 기억이 있는 도로가 있고 눈 뜨면 역 근처인데 그런것도 없이 아주 기절해서 자다가 회사 다 도착해서 거의 못내릴뻔함. 그렇게 다시 일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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