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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곡차곡 독서

[24년 02월의 독서] 인간실격(다자이 오사무)

by stherhj 2024. 3. 1.

[첫 번째 수기]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밥을 안 먹으면 죽는다는 말은 제 귀에는 그저 듣기 싫은 위협으로만 들렸습니다. 그 미신은(지금도 제게는 미신처럼 느껴집니다) 항상 제게 불안감과 공포심을 안겨 줬습니다. 인간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니 일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만큼 저에게 난해하고 막연하며, 또한 협박 같은 여운을 주는 말도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제가 가진 행복의 관념과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관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저는 그 불안감 때문에 밤마다 뒤척이며 신음하다 심지어는 미쳐 버릴 뻔한 적도 있습니다. 저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어릴 때부터 저는 행운아라는 말을 신물이 나도록 들어 왔지만 정작 저로서는 지옥에 사는 심정일 뿐, 제게 행운아라고들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저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안락해 보였습니다.
 
[두 번째 수기]
바닷가, 파도가 밀려와 부서지는 곳이라 해도 좋을 만큼 바다와 가까운 해안가. 시커먼 줄기에 우람한 덩치의 산벚나무가 스무 그루 넘게 줄지어 서서 새 학년이 시작될 때면 갈색의 끈끈한 어린잎과 함께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눈부신 꽃을 피우고, 이윽고 눈처럼 꽃잎이 흩알리는 시기가 찾아오면 수없이 많은 꽃잎이 바다에 떨어져 물 위를 수놓으며 떠돌다 파도를 타고 다시 물가로 되돌아오는 곳. 그 벚나무 모래톱을 고스란히 교정으로 사용하는 도호쿠 지방의 한 중학교에 저는 제대로 시험공부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저냥 무사히 입학을 했습니다.
(-> 내가 항상 꿈꾸는 곳이잖아..! 행운아가 왜 아니야~)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솜에도 상처를 입습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는 겁니다.
 
[세 번째 수기]
1
세상이라니 어떤 세상을 말하는 걸까요. 인간의 복수형을 말하는 걸까요. 대체 어디에 그 세상이라는 것의 실체가 있단 말이지. 어쨌거나 강하고 모질고 무서운 곳이라고만 생각하며 지금껏 살아온 그 세상인데, 호리키의 말을 듣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가 말하는 세상이란 건, 널 말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그때 이후 저는 '세상이란 개인이다'라는 철학 비슷한 것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상이란 한 개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기 시작한 뒤부터 저는 이전까지보다는 그나마 조금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음 날도 같은 짓을 되풀이하고
어제와 다르지 않은 관례에 따르면 된다네
말인즉 거칠고 커다란 환락만 피한다면
자연히 커다란 슬픔도 찾아오지 않는 법
앞길을 막아선 거추장스런 돌덩이를 
두꺼비는 돌아서 가지
2
의협심
"선은 악의 반대말이야. 죄의 반대말이 아니라." "악과 죄가 다른가?" "다르다고 생각해. 선악의 개념은 인간이 만든거잖아. 인간이 멋대로 만들어 낸 도덕의 언어라고."
"감옥에 갇히는 것만이 죄가 아니야. 죄의 반대말을 알게 된다면 죄의 실체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신, 구원, 사랑, 빛, 하지만 신한테는 사탄이라는 반대말이 있고, 구원의 반대말은 고뇌일 테고, 사랑은 증오, 빛은 어둠이라는 반대말이 있고, 선은 악, 죄와 기도, 죄와 후회, 좌외 고백, 죄와.. 아아, 다 비슷한 말이네. 죄의 반대말은 대체 뭐지?"
죄와 벌. 도스토옙스키. 머리 한구석으로 그 말이 섬광처럼 지나갔습니다. 그렇구나! 만약 도스토옙스키가 죄와 벌을 비슷한 말이라고 생각한게 아니라 반대말이라고 생각하고 나열한 것이라면? 죄와 벌, 절대 서로 통할 수 없는 것,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일 수 없는 것. 죄와 벌을 반대말로 생각한 도스토옙스키의 물이끼, 썩은 연못, 어지럽게 뒤얽힌 그 깊은 바닥의...
때 묻지 않은 신뢰감은 죄가 되는가.
신께 묻습니다. 무저항은 죄가 되나요?
지금 저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 세상에서 딱 하나 진리 같다고 느낀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우리의 고통은 정말 아무도 모르는 것. 이제 곧 어른이 되면 우리의 괴로움과 외로움은 우스운 거였다고 아무렇지 않게 추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완전히 어른이 되기까지의 그 길고 짜증 나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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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https://youtu.be/UHCoupSANo4?si=Y37UDOzjOWOFeDi5

(읽고나서) https://youtu.be/TJtXyhcbpBE?si=4V79x7_yhDW-5XU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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