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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4] 출근하는 서랍이/'22

첫 제주의 셋째 날

by stherhj 2022. 6. 4.

 

5월 17일 (화)

마지막날 같은 기분이 드는 셋째날 아침이 밝았다. 전부터 유나와 흰색 옷을 입기로 정했던 날이었다. 아무것도 못정했으면서 셋째날 흰 옷 입자는 것만 제일 먼저 정했다. 덕분에 호주에서 매일같이 입다 한국에 돌아와 한 번도 꺼내보지 못한 원피스를 입었다. 어제 실패한 가파도에 가기위해 더 일찍 일어나 조식을 먹고 길을 나섰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떠나온 여행이지만 그 덕에 이렇게 저렇게 마음대로 계획을 바꿔 마음 편히 다닐 수 있었다. 운진항에 도착해 바로 떠나는 배에 몸을 실었다. 가파도에는 기대했던 청보리밭 대신 황금보리밭이 펼쳐져있었다. 조금 아쉬웠지만 좌 보리밭 우 꽃밭 사이로 산책하며..사실 여유롭진않고 내리쬐는 햇살에 눈이 너무 부셨다. 조용한 무인카페를 찾아 엽서도 작성하고 천혜향 쥬스도 마셨다. 섬에는 관광오신 어머니들로 가득했다. 젊은이들은 모두 출근한 것이 분명..

섬에서 나와 흑돼지를 점심으로 먹었다. 제목은 '첫 제주'지만 사실 고등학교 때 제주에 왔던적이 있다. 그 때 흑돼지에 털이 콕콕 박혀있는 것을 보고 먹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 조금 꺼려졌는데 다행히 그런건 없었다~.~ 점심을 먹고 보름왓으로 가는 나름의 장거리 운전이었는데 중간에 가고싶었던 카페를 경유해가기로 했다. 큰 기대 없이 카페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이 고요하고 예쁜 카페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보름왓에 도착해 온실을 구경하며 조금 실망했지만 밖으로 나서 보라유채꽃밭을 보고.. 그 사이즈에 또 조금 실망했지만..사진으론 실제보다 멋지게 나와 덜 실망했다.. 주변에 웨딩촬영 하는 커플들이 많았는데 이유가 있었다. 이미 체력을 탈탈 털어써서 대충 요리조리 구경하고 숙소로 향했다. 사실 바로 숙소로 향하지 못하고 그 사이에 데이지 꽃밭으로 유명한 교회가 있어 살짝 구경갔다. 생각보다 찐 교회라 뭐하세요!하면 바로 예배드릴 태세로 갔는데 그냥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아서 안심..

마지막 저녁이라고 뭘 먹을지 이것저것 찾아보다 결국 근처에서 고등어구이와 돌솥해물탕이었나를 먹었다. 마지막 밤의 숙소는 북스테이 하는 곳으로 옮겼는데 매일 저녁에 ㅅㅏ라ㅇ..을 주제로한 필사모임이 있다하여 유나와 고민고민하다가 참가하기로 했다. 모임은 저녁 8시에 시작해서 40분간 각자 고른 책을 필사하는 시간을 갖고 돌아가며 이야길 나누었다. 나는 알랭드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골라 읽고 기록했다. 대화를 이끄는 숙소 주인장분이 같은 주제로 5년 넘게 매일 모임을 진행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처음 본 사람들한테 굳이 나누어야하는 내용인가 싶기도 하고 매일 같이 봤던 친구와 모르는 사람이 섞여 대화하는게 약간 간질거렸지만~ 여행을 마무리하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사람 저사람들이 모여 조용조용한 마지막날 짠을 하고 잠에 들었다.

필사는 처음 해봤는데 (사실 책도 잘 안읽는데 필사를 했을리가 없다 후후..ㅜㅜ) 기록했던 구절이 기억에 오래 남고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되새겨볼 기록이 남아 좋았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생일선물로 받은 노트에 매일 짧게나마 필사하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했다. 길지 않은 여행이었지만 그 시간 속 무언가를 일상 속으로 가지고 돌아온 것이 좋았다. 요즘 실물 책은 거의 안보고 전자도서관으로 책을 빌려서 패드로 읽었는데 마지막 밤에 필사했던 '여행의 기술'은 굳이 실물 책을 갖고 싶어 또 굳이굳이 서점에 직접 가서 책을 사왔다. 책을 읽을 때마다 그 때 그 기분이 떠오르기도 하고 시간에 따라 다른 생각이 들어 이렇게 또 우연히 만난 책이 기억에 남을 페이지 페이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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