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6일 (월)
날이 밝으니 어젠 어두워 보이지 않았던 창 밖 바다가 보였다. 바다 앞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평소 잘 챙겨먹지도 않는 조식을 먹었다. 오후엔 서핑을 하려고 전날 밤에 자리가 남은 2시 30분으로 예약해두었다. 오전엔 청보리밭을 보기 위해 가파도에 다녀오려 집을 나서 운진항으로 향하였다. 항구엔 사람들이 많았고 지금 떠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시간대의 배를 타도 서핑 시간에 맞춰 돌아올 수 없었다.
결국 가파도 일정은 내일 오전으로 미루고 차로 돌아와 여기저기 찾아보다 일정에 없던 소품샵들을 구경하게 되었다. 사실 소품샵은 감흥이 없었는데 우연히 주차장 옆에 양귀비밭이 있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브런치 겸 카페에 갔다. 그 전까지 역시 월요일이라 제주엔 사람이 없구나 하고 돌아다녔는데 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카페에 모여있는듯했다. 음식이 나오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해서 포기하고 나와 숙소 가까운 곳에서 보말칼제비와 돌솥밥+미역국같은 것을 먹었다. 사실 서울에선 칼국수, 수제비, 돌솥밥, 미역국은 내가 절대/거의(엄마가..절대라는 말은 없다고 했다..) 먹지 않을 음식 4가지에 들어가는데(심지어 돌솥밥에 콩이있었음 콩!) 뭔가 서핑하기 전이라 든든한 음식을 먹어야할 것 같아서 열심히 먹었다.
그렇게 밥을 먹고 서핑하러 가기만 하면 되는데..갑자기 차를 빼는데 도로 한복판에서 차가 멈췄다. 차를 빼서 좌회전하기 위해 두 차선을 거쳐가는데 그 사이에 멈춰서 양 차선에서 오는 차들 모두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다. 시동을 몇 번이나 다시 걸어봤는데도 움직이지 않아 그 짧은 순간에 렌트카 픽업할 때 견인 보험을 추가로 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어찌저찌 상황을 벗어나서 아픈 심장을 부여잡고 출발할 수 있었다.
바로 바다로 가는줄 알았는데 서핑샵이 따로 있어 그곳에서 웨트수트로 갈아입고 짧은 강의도 들었다. 10분 거리에 있는 중문색달해수욕장으로 이동하여 또 짧게 자세를 연습하고 바다로 들어갔다. 호주에서 지낼 때 12월 연휴기간에 골드코스트 서퍼스파라다이스에 가서 이름부터 서핑을 하지 않으면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서핑 수업을 들었던 적이있는데 전혀 해내지 못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다급한 상황이 오니 내 영어가 얼마나 짧은지도 느꼈다. 급할 수록 모국어의 본능으로 돌아가는..) 같은 사람 몸인데 보드 위에서 서지도 못한다니 슬프기까지 했다. 그래서 당연히 이번에도 해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어로 아주 친절하게 한 명 한 명 봐주시는 서비스대강국 대한민국에서 보드에서 일어나는 것에 성공했다..! 물론 반에서 가장 못하는 것 같긴했지만 그냥 절대적인 나만의 기준으로 발전했다..
서핑을 하고 대충 씻었지만 밥을 먹으러 어딜 들어가기도 그렇고..숙소로 돌아갔다가 다시 나오기도 그렇고..해서 폴폴이가 추천해줬던 하나로마트 회에 도전하였다. 근처 마트에 가서 고등어회와 광어회(?)를 포장해 나와 스타벅스 DT도 들려 숙소로 향했다. 씻을 정신도 없이 2층으로 올라가 열심히 회를 먹고 디저트로 스타벅스에서 사온 음료를 마셨다. 방으로 돌아와 씻고..오늘 정말 열심히 움직였는데 워치를 안끼고해서 운동링이 다 차지 않아 억울해했다.
제주에 있는 나흘 내내 동그란 달이 밝게 떠서 별 구경은 못했지만 밤마다 바다에 비친 달과 함께했다.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잠들기 직전에 정신을 차려 유나와 함께 달구경 산책길에 나섰다. 숙소 앞을 서성이다가 컴컴한 길이 무서워 2층으로 올라갔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항상 비슷한 주제지만 또 나누고나면 조금은 가벼워지는 대화보따리를 주고받으며 행복한 둘째 날 밤을 보냈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서핑샵 직원분들이 계속 기억에 남았다. 항상 내가 선택해 살아가는 인생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데 그렇게 새로운 곳에서 나와는 다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생각과 그 과정에 관심이 갔다. 출근길에 유튜브에서 영상들을 찾아보며 내가 지금 향하고 있는 자리가 내가 선택한 곳이 맞는지 계속 자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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