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
결국 스스로 삶 속에서 무엇을 추구하고 싶었던 것인지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여기까지 왔다. 친구들과 모두 똑같이 생긴 책상에 앉아 공부하던 교실에서는 무엇을 하며 매일을 보내야하는지가 뚜렷했는데 조금만 벗어나니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가지가 넘는 좋은 인생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나는 가끔은 한 번 뿐인 인생 좁더라도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보고 싶다가도 또 가끔은 한 번 뿐인 인생 그렇게 열심히 살며 뭐든 이루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건지 혼란스러웠다. 어떤 특정한 형태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본인이 어떤 지점에 서 있을 때 가장 행복에 가까운지 아는 사람이 만족하는 삶을 산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옳든 그르든 무언가 뚜렷했던 시절엔 언제나 오늘은 어제보다 더 행복하고 오늘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 내일에 대한 기대로 매일을 살았다.
대학원 진학을 위해 퇴사하고 귀국해 다시 펜을 잡으며 코로나가 퍼지고 준비하던 박사진학도 계획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역시 지금 되돌아 생각해보면 다행인 일이다.) 마음도 바깥 상황도 혼란스러워서 어차피 뭘 새롭게 하기도 어려웠던 시기에 계획에 없던 AI전략팀 오퍼를 받았다. 취업을 하게 되더라도 빅데이터 쪽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잘 알지도 못했던 인공지능에 전략이라니 망설여졌다. (그치만 결국 입사 후 '22년 AI선행기술팀-'23년 예측기술팀으로의 팀 진화를 거쳐 얼추 처음 생각하던 일과 비슷한 결로 나아가게 되었다. 역시..내가 생각하던 직무와 다르더라도 우선 입사하고 봐야한다는 말이 맞았다!) 당시 교수님께서 한 번 발붙인 후엔 떠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으니 박사유학에 대한 생각이 뚜렷하다면 입사보다는 한 해 더 연구하며 준비해보는 것은 어떨지 제안해주셨다. 당시 취업 혹은 연구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일 년 정도 한국 회사도 다녀보며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리면 양쪽 다 경험해보고 더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되돌아 생각해보면 당시 그런 마음가짐으로 박사과정에 진학하지 않았던 것은 결과론적으로 옳았으나 매년 phd 입시 기간이 다가오면 교수님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회사를 다니며 스스로 많은 부분에서 변해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이 밖에서 나는 또 다른 사람이고 잠시 주어진 환경에 맞춰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 자체가 내 몸은 여기에 내가 진짜 있어야할 곳이라 생각하는 곳은 다른 어딘가에 있어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았지만 혼자 알게 모르게 지치는 요소이기도 했다. 누구말대로 그냥 사회화되는 과정이었을 수도, 혹은 실질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무언가/누군가가 생겨난다면 이런 무형의 괴로움은 자연스럽게 옅어졌을지도? 그냥 나는 나대로 있으면 되는데 나는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 여러가지 스스로 컨트롤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작게는 수면 시간부터 더 나아가선 내 마음가짐까지 그랬다. 어떤 새로운 일이든 왜 굳이 안 해? 하던 쪽이었는데 굳이 왜?의 방향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처음 데이터 공부를 시작할 땐 지금까지 해왔던 어떤 공부보다도 배운 것을 바로 적용해가며 이런 재미가 있구나 했는데 오히려 입사후엔 가만히 있기는 싫어서 여러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도 동시에 이걸 왜 굳이 공부하지?하는 생각이 자꾸 튀어나와 결국엔 손을 놓아버렸다. 전엔 새로운 사람을 만나 다양한 모습의 세상을 만나는 것이 즐거웠는데 익숙하지 않은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근무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는데 내가 어떻게 살든 비슷한 보상을 받는 환경이 안정적이면서도 동시에 나한테 어떤 영향을 미쳤다. 아무튼 여러모로 좀 바보가 된 것 같다는 뜻..일례로 비슷한 매일을 보내서인지 정말 어떤 뭐가 떨어져서인지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바로 떠오르지가 않는 날들이 점점 많아졌다.
입사 전에는 한 번도 회사에 다니는 스스로의 모습을 상상해본적이 없었다. 그치만 동시에 중고교 시절 희망 직업을 적어낼 때마다 '다들 적어내는 특정 직군에 종사할 사람은 극히 일부고 대부분 회사에 다니게 되는거 아닌가?'생각했는데 그 때 뭐가 좋고 뭐가 싫은지에 대한 고민이라도 했으면 직무라도 좀 뚜렷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까? 부모님 집에 살며 회사의 여러 지원 속에서 지내서인지 당장 월급을 받는 것이 생계 유지에 필수적인 행위라고 느껴본적이 없는데 그래서 더 맥락을 못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월급이 없으면 뭘로 먹고 살건지에 대한 대책은 따로 없음 흐흐 그냥 그렇게 느낀 적이 없었던 것 뿐..)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기 전 여러 우선순위에 대한 내적 갈등이 심했는데 언니들은 막상 경제활동을 시작하면 이런 고민들은 희미해질거라고 했다. 어떤 측면으로는 정말 그랬다. 정말 그랬나? 그냥 여러 생각의 가지가 무뎌졌다. 학교를 다닐 땐 이 사회에 태어나 한 사람의 몫을 하며 살기가 벅차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오히려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1인분의 몫을 다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되돌아보면 지난 1176일 중 즐겁지 않는 날이 단 하루도 없었는데 이렇게 적어내리니 퉁쳐서 별로 좋지 않았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 아쉽다. 입사 전 몇 년간 내 인생의 방향성과 전문성 두 가지가 결여되어있는 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회사에서의 시간 동안 커리어적인 측면에서의 방향성은 조금은 잡아왔다고 생각한다. 전문성은..이제 더 쌓아가야지! 어렸을 적 도움을 받았던 곳에 작은 후원을 시작하며 지금은 흐릿해진 인생의 목표를 아주 조그맣게 이루어가기 시작하기도 했다. 행복하고 따뜻한 회사생활을 했다! 사람들이 (나쁜말)회사 너무 싫어!(나쁜말)할 때마다 진심으로 말하는건지 그냥 으레 하는 투덜거림인지 잘 와닿지 않을정도로! 일, 사람, 돈 중 하나만 있어도 꽤 괜찮은 곳이라고 했는데 내 기준 셋 다 과분했기 때문에 더욱 어떤 변화의 결정을 내리기까지 힘들었다. (근데 그 괜찮다가 어떤 괜찮다였을까?)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조차도 이런 결정을 내리고 나아가고 있는 것에 대하여 언젠가 후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치만 호주에서도 다음 단계를 위한 결정을 내렸을 때 다시는 이런 회사에 다닐 수 없겠지 난 후회할거야!했지만 이후 단 한 순간도 그 결정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막연하지만 가는 곳에 길이 있겄지~
글로 이렇게 주욱 적어내려도 내가 스스로 어떤 흐름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는데 단편적인 조각조각의 고민들을 옆에서 들어주고 공감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 결론적으로 내 스스로는 그렇지 못했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업무 환경에서 일하고 배우는 2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함께할 수 있어서 무한하게 즐겁고 감사했다. 처음으로 한국에서 제대로 된 회사생활을 해보며(순한맛이었지만!) 나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는 날들이었다. 덕분에 나아가며 쉽지 않은 날들이 있더라도 다가올 매일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있을 것 같다. 안녕!
['21~'24] 출근하는 서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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